Posted on 2026. 04. 22.
성북동 박은주 교수, 전통을 현재와 세계로 잇다
“한복을 짓는 학자, 세계를 무대에 세운 장인”
(시사프리신문=정진만 기자) “한복은 사는 옷이 아니라, 나에게 맞춰지는 문화다”
서울 성북동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은은한 색감의 한복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전통의 선과 색이 고요하게 흐르는 이곳은 단순한 한복집이 아니다. 전
통복식을 학문으로 연구하고, 이를 다시 세계 무대로 확장시킨 공간이다. 이 작업실의 주인은 전통복식 박사이자 한복 제작 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은주 교수다.
■ 한복으로 학사·석사·박사… ‘전통복식 박사’의 길
박은주 교수는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전통복식을 전공하며 학사부터 박사 과정까지 한 길을 걸어온 전문가다. 전통복식은 역사와 문화, 미학이 결합된 분야로, 박사 과정까지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는 한복을 ‘입는 옷’이 아닌 ‘해석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로 바라보며 연구를 이어왔다.
이론으로 축적한 지식을 실제 제작으로 풀어내는 점에서 ‘학자이자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성북동에서 한복 작업실을 운영하며 맞춤 제작을 이어가는 한편, 성신여대 겸임교수를 비롯해 한성대학교, 성신여고 등에서 강의를 진행하며 교육과 현장을 병행하고 있다.
■ 나트랑을 물들인 한복… 세계 무대에서 빛나다
지난 2022년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 나트랑에서 열린 대형 패션 행사에 초청된 박 교수는 한복 패션쇼를 통해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수천 명의 관객이 모인 가운데 베트남 국영방송까지 취재에 나선 이 무대에서 그는 한복과 아오자이를 함께 선보이며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베트남 기후를 고려한 여름 한복과 오프숄더 한복 드레스, 철릭 원피스 등은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작품으로 ‘K-패션’으로서 한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박 교수는 “한복은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의상입니다. 전통의 선과 색감은 해외에서 더 새롭게 받아들여집니다”라고 말했다.
■ “어울림을 설계하는 한복”… 장인의 손에서 완성
박 교수의 한복은 단순한 제작을 넘어 ‘맞춤 설계’에 가깝다. 체형과 피부톤, 착용 목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디자인을 제안하고, 가장 어울리는 한복을 완성한다.
그는 작업 철학에 대해 “한복은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분위기와 시간을 담는 옷”이라고 설명했다.
고객들 사이에서도 “체형을 자연스럽게 살린다”, “색감 선택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이어지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 줄어든 시장 속에서도 이어지는 ‘박사의 선택’
하지만 한복 시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혼례 문화 변화와 대여 중심 소비 확산으로 맞춤 한복 수요는 크게 줄었다.
박 교수는 “요즘은 한복을 찾는 분들이 많이 줄어 생활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대여 한복은 많지만 제대로 맞춰 입는 전통 한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 성북동 작업실… 전통을 지키는 현장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성북동 작업실에서는 지금도 한 벌씩 맞춤 한복이 완성되고 있다.
충분한 상담을 거쳐 디자인과 색감, 용도를 결정하는 과정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시간에 가깝다.
■ “전통은 누군가 지킬 때 이어진다”
성북동의 이 작업실은 단순한 한복점이 아니다. 전통복식 박사로서의 학문, 장인으로서의 제작, 교육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해외 무대 경험이 한 공간 안에 담겨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도 한복 한 벌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작업은 점점 더 귀해지고 있다.
전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지키고, 누군가 선택할 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은주 교수의 한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