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5. 05. 28.
익산 모녀의 참담한 비극, 아직도 방치된 복지 사각지대 더는 안돼
전북 익산시에서 숨진 모녀의 참담한 극단적 비극은 들여다볼수록 가슴이 아려지고 먹먹해진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한 기초생활 수급가정의 처절한 위기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음에도 마지막 손길을 제대로 뻗지 못한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8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쯤 익산시 모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 60대 여성이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녀는 집 열쇠와 함께 손바닥 크기의 쪽지를 가슴에 품고 있었고 쪽지에는 “하늘나라로 먼저 간 딸이 집에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집에서 발견된 20대 딸은 한 달여 전 사망한 상태였다. 우울증과 신경증을 앓던 딸의 사망을 슬퍼하다 어머니도 절망의 끝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수사 당국의 조사 결과다.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 모녀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망이 사회적 이목과 관심을 끈 배경은 2006년 7월부터 18년간 지급되던 생계·의료·주거급여 등을 받아 생활해왔으나 생계·의료비가 지난해 1월 끊긴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녀 모두 지병을 앓고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자들인 이들은 지난해까지 월 120여만 원을 지원받아왔지만, 고인들과 함께 살아왔던 큰딸이 취업하면서 소득이 생기자 월 100여만 원의 생계비지원이 중단됐다. 그뿐만 아니라 월 100만 원 넘게 드는 의료비마저도 지원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들 모녀에게는 주거급여 20만 원 지급이 전부였다고 한다.
실제 생활 환경과 다른 유리(遊離)된 ‘행정 기준’이 적용되면서 이들은 결과적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한 셈이다. 큰딸이 취업함에 따라 복지 혜택은 오히려 줄어들어 가족이 세대를 분리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봉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큰딸이 올해 1월 결혼을 해 세대 전출을 하면서 다시 생계·의료 지원 자격이 회복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들 모녀는 재신청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급여를 다시 받으려면 수급자가 직접 지방자치단체에 신청 절차를 밟아야만 하고 금융정보 제공 등에 동의하는 절차가 필요한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들 모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들 모녀가 이러한 절차를 밟아 올해 1월부터 다시 생계·의료 급여가 지급만 됐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더욱 옥죈다. 적어도 극한의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는 됐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위기 가정의 개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 대상자임에도 서비스에서 누락이 돼 버리는 ‘복지 신청주의’는 과거부터 논란이 되어 왔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통상 단전·단수, 건강보험료·통신비 체납 등 47종의 위기 징후를 살피는데, 모녀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체납하지 않고 모두 납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일이 기초생활 수급자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면 좋으련만, 이미 현장은 업무 과부하 상태라는 게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목멘 하소연이자 현실이다. 인력 배치를 효율화하고 복지 급여 공무원이 직권으로 급여 지급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안 등도 대안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이번 전북 익산 모녀의 비극을 누구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치권과 우리 사회 모두 그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복지전달체계가 모두 완벽하게 추진할 수는 없겠지만, 막대한 복지 예산을 감당하고 있는 주체들인 국민을 안타깝게 하는 비극만은 더는 발생하지 않아야만 한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짊어진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 선택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2014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도 위기 가구의 ‘참담한 비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같은 해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해 ‘신촌 모녀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최근에도 2023년 9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4살 안팎 미등록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아들은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으나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었다.
더구나 초고령사회 진입과 1인 가구의 급증, 이혼의 일상화 등이 겹치면서 아직도 우리 주변에 복지 사각지대가 너무도 많다. 처참한 생활고와 신병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때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잊히고 마는 가슴 아픈 복지정책의 허점이 노정(露呈)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촘촘하게 사회 안전망을 갖춰 생각지도 않은 복지 사각지대가 나타나는 일을 막아야만 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따질 것 없이 치밀하고 정교한 복지 매뉴얼(Manual) 강구는 물론 빈틈없는 안전 감시망을 서둘러 갖춰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전국 1인 가구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전국 1인 가구 수는 1,002만 1,413가구다. 급속한 고령화와 비혼주의 확산 등이 1인 가구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연령대별(10세 구간)로 보면, 60∼69세가 185만 1,705가구로 가장 많았다. 30∼39세는 168만 4,651가구, 50∼59세가 164만 482가구로 뒤를 이었다. 70대 이상도 198만 297가구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자 1인 가구(515만 4,408가구)가 여자(486만 7,005가구)보다 많았다.
배우자가 없거나 자녀와 관계가 단절되면서 혼자 사는 중 고령층은 매우 심각한 위험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특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위기 가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행정제도와 지침 그리고 행정기관의 조사와 결정, 지급까지의 과정 등이 위기가정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의 ‘현장 판단권’을 강화하고,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집행할 수 있는 제도’정착이 긴요하다.
그래서 선집행하고 후처리할 수 있게 해야만 위기 가구 상황에 유연하게 선제 대응할 수 있어서다. 특히 담당 공무원의 직권 신청으로 당사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또, 위기 가구를 진단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 확보 및 양성이 시급하고, 이에 맞는 재정지원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복지는 모든 국민이 잠재적 위기 속에서도 존엄성과 생존의 지속가능성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다.
단지 따뜻한 관심에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이자 ‘사회 안전망’ 그 자체이다. 그 누구도 생계비, 병원비 그리고 행정 기준으로 인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도록 방치(放置)하고 방기(放棄)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위기 가구와 복지 사각지대의 난무(亂舞)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숨진 딸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힘겨웠던 삶을 기록한 글을 남겨 이들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잃어갔던 것으로 보여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이들 모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우리 사회의 복지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복지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도 이번 사건은 현행 복지제도가 얼마나 현실과 괴리(乖離)되어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극심한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렸으나 위기의 신호를 감지하고 대응할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복지의 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했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다시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는 여전히 소득이나 재산 같은 정량적 기준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개인의 건강 상태나 가족 구성, 사회적 연결망의 단절 등 실질적 위험 요인을 반영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고 미흡한 실정에 방치(放置)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익산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은 단지 한 가족의 비극으로 치부하고 끝나서는 결단코 안 될 일이다. 이들이 생전에 남긴 고통의 흔적과 서러운 눈물을 우리 사회가 외면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죽음을 헛되이 방관(傍觀)만 하게 되고 말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기초생활 보장이나 위기 가구를 책임지기 위한 긴급복지제도나 사회적 돌봄에 대한 확실한 프로그램을 조속히 만들어서 신속히 실행으로 답해야만 할 것이다. 위기에 처한 국민을 더 빨리 발견해서, 더 따뜻하게 보살피고 더 잘 돌보는 방안을 찾아 ‘가장 절실한 이들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