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5. 04. 30.
상하이 매헌정을 아시나요
서울북부보훈지청 박경옥
외국에서 우리나라 인물의 기념관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자랑스러움, 애국심, 애잔함? 아직 중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 ‘매헌정’을 보게 된다면 울컥할 것만 같다.
상하이 루쉰공원, 옛 이름 홍커우 공원 1932년 4월 29일. 상하이를 침략한 일본군이 일본 천황의 생일을 맞아 이 공원에서 전승기념을 겸한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오전 11시 40분경 일본 국가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윤봉길 의사는 수통형 폭탄의 덮개를 벗겨 안전핀을 빼었고, 앞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 위로 폭탄을 투척하였다. 이 의거로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감격해 하며, 종래 무관심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침체일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역할 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상하이로 망명 후 독립운동의 고뇌 속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우리 청년 세대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사랑보다도,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라고 보내고, 거사 며칠 전 두 아들에게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조선에 있는 동포들에게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라고 유언을 남기며 오로지 민족의 독립과 조국을 위해 삼켰을 눈물에 울컥해진다. \'백범일지\'에서 백범은 거사 당일 아침 윤 의사와 가진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때마침 7시를 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윤 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나는 기념품으로서 그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그에게 주었다.’ 그 담담한 대화를 상상하자니 조국애로 버틴 25년의 생애가 더욱 숭고해진다.
일신의 안위보다는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을 위한 짧은 생을 선택하여 태극기 앞에서 폭탄을 들고 섰던 한 청년의 모습. 중국의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한 공원 한켠에 자리 잡은 매헌정에서 오롯이 빛나고 있을 그의 모습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 이 땅에서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