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9. 26.


9.28 서울수복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북부보훈지청 복지과 박경옥

  파란구슬처럼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계절의 변화를 완연히 느끼는 9월이다. 우리의 9월은 6.25전쟁에서 대반격의 서막을 알린 인천상륙작전이 있던 달이자 적에게 빼앗긴 우리의 수도 서울을 되찾은 달이기도 하다.
  인천상륙작전이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던 작전이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은 북한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전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북한군이 초전에 절대적으로 우세하였다. 정치적인 불안정 속에서 무방비상태에 있던 대한민국은 전쟁 3일 만인 6월 27일 서울을 점령당하고 말았다. 개전 한 달 만에 UN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7월 7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한반도에서의 UN 군사 활동을 위하여 미국에 최고지휘권을 위임하는 결의를 채택하여 맥아더 장군이 UN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맥아더사령관은 미 합동참모본부에 인천상륙작전안을 상신하였으나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은 작전에 부적합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북한군이 부산의 점령에 혈안이 되어 그 곳에 집중적으로 병력이 집결되었기 때문에 인천의 방어는 소홀하고, 한국의 수도 서울수복이 군인들과 민간에게 주는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UN군이 북한군의 저지선을 돌파하여 대반격에 나서고 북한군에게 서울을 빼앗긴지 3개월 만에 서울에 진입하여, 마침내 9월 28일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였다. 서울수복의 전초전이 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우리 국군과 UN군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9월 28일은 일요일이다. 서울수복의 날을 맞아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며 가까운 6.25 충혼탑이나 기념비를 찾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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