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4. 24.


4월 19일을 기억하며


서울북부보훈지청 권욱선

  4월은 어떤 달로 기억되며 무슨 날이 생각날까?
  시인 토마스 엘리어트의 “황무지” 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 구절이 불현듯 생각난다. 시의 전문을 보니 너무 길어서 그 뜻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고 푸른 나무의 잎이 돗아나는 4월을 오히려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역설적인 생각이 우리 대중들에게는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와서 널리 알려진 시인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이렇듯이 누구에게 4월은 결혼 시즌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희망의 달이 되겠지만 54년전 대한민국에게 4월은 독재에 항거하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있었던 잔인한 달이었음을 기억해 내야만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6.25전쟁을 치른 이후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 동안 같은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였고 1960년 3월 15일 제 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을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후 4월 11일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어 분노한 시민들의 2차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하였고,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1960년 4월 19일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1960년 4월 26일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이렇듯이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항거한 것이지만 “의거”나 “4.19”로 불리우다가 1993년에 “4.19혁명”으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동안 공원묘지로 서울시에서 관리해오던 4.19묘지도 성역화 사업을 거쳐 1995년 4월 19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또한 1997년 4월 19일 4.19혁명기념관을 개관하여 4.19혁명을 계승할 정신적 교육장과 우리나라 민주이념의 성지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4월19일 제54주년 4.19혁명을 맞아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4.19민주묘지”를 방문하여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수호하였는지를 확인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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