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4. 24.
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에 거는 기대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태현
말기 폐암 환자 김모씨 등 6명과 그 외 31명이 1999년 국가와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15년만에 흡연자측인 원고의 패소로 확정 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판결 이유에서 흡연과 폐암의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제조사인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그러나 며칠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기한 소송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지난해 8월 건강보험공단은 연세대 지선하 교수팀과 공동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130만명을 대상으로 이들을 19년동안 추적 연구한 대단히 방대하고 획기적인 데이터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이 6.5배~2.9배 높고,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는 2011년 한 해 동안만도 35개 질환에 1조 7천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추산하였다.
이 연구로 이제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와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진료비 규모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이상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기대해 볼만 하지 않을까?
담배소송과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개인이 원고가 되어 3건의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패소하였거나 법원에 각각 계류중에 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폐암중 소세포암’과 ‘후두암중 편평세포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2011.2.15 선고, 2007나18883판결)
해외의 소송 사례로는 먼저 미국의 경우 1954부터 지금까지 800여건의 소송이 제기 되었으나 단 한건도 원고가 승소한 사례가 없었다. 그러나 1994년 미시시피주를 시작으로 49개 주정부와 시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므로써 1998년에야 비로소 필립모리스를 비롯한 40여개 담배회사로부터 2,460억달러(260조원)를 변상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1997년 플로리다주는 위해한 물건을 제조한 사업체에 주정부가 ‘의료비용’ 배상 청구가 가능토록 하는 법을 제정하므로써 사안마다 인과관계와 손해를 입증하는 대신 통계를 통해 의료비용을 산출하여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이웃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 미국 플로리다주법이 합헌판결을 받던 해인, 1997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가 ‘담배손해배상법’을 제정하게 되었고, 2013년 온타리오 주정부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500억 달러 규모의 의료비 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상의 두 해외 사례에서 몇가지 시사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첫째, 담배 소송은 개인이 아닌 주정부와 같은 공공기관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거대한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비용도 많이 들고 지루한 법적 공방이 수반되기 때문이며, 공공기관은 미국과 캐나다의 주정부처럼 ‘의료비용을 지불한 기관’이어야 한다.
둘째,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법원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에 대한 판단이 아닌 담배의 결함과 제조과정의 위법성에 대해 판단을 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인과성에 주목한다면 이후 재판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법원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담배로 인하여 발생한 의료비용에 대해 비용부담자가 직접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통계적 자료만으로도 손해 및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 내용의 ‘담배소송법’이 제정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으로 본다.
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건강보험공단은 공공기관이고 이미 담배소송의 당사자로서 필요한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본다. 따라서 공단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위축되지 말고, 그동안의 실증적인 연구성과와 해외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소송을 추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