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4. 03. 26.
안중근의사 순국 104주년을 기리며
서울북부보훈지청 강래희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시킨 한 남자.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펼치고는 "대한제국 만세"를 부르며 현장에서 체포된 이 남자는 뤼순 관동군 사령부 지방법원법정에서 6회에 걸친 재판을 받는 중에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 의용군사령관으로서 총살하였다” 고 거사 동기를 밝혔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불멸의 영웅 안중근 의사에 관한 내용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운동자이자 동양평화론자.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31세 꽃다운 나이로 순국한 영웅 안중근 의사. 해마다 이즈음이면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려보게 된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 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나는 동양평화를 위해 한 일이니 내가 죽은 뒤에도 한·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 바란다." 이는 조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치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당당히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이다.
또한, 안 의사는 국권이 회복되면 자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 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며 마지막 바람을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유해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순국 104주년을 맞았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하얼빈역 1번 플랫폼 앞에 기념관을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는데 기념관 시계가 9시 30분에 멈춰 있다고 한다. 바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감행한 그 시간이다. 하얼빈시의 중국인들마저 안중근 의사가 추구한 동양평화의 정신을 오늘의 중국인도 배웠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선구적인 사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하니 현재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동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안중근 의사가 약 100년 전에 제시한 동양평화론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옥중에서도 일본인들의 존경까지 받았으며 순국 후에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깊은 역사적인 발자국을 우리는 현재 마주하고 있다. 비록 잃어버린 그의 유해를 아직도 고국으로 묻지 못하고 있음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안중근 의사가 우리 역사에 남긴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인류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깊이 새기고 계승하여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 유해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늘 숨쉬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아름답고 고귀한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께서 사형 직전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처럼 어딘가에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대한민국 곳곳을 밝혀주시고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