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12. 24.


원칙과 융통성

 

 

 

2013년이 저물어 간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한반도의 정세가 어수선했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야당의 거리정치가 시작되더니 급기야 대선불복으로까지 번져 이곳저곳에서 대통령 사퇴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철도 파업에 따른 철도노조 위원장 검거를 위한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터진 과잉진압 논란으로 28일 총파업과 정권퇴진 선언까지 했으니 정말 어수선한 시절이다.
무엇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갔을까?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해 철저한 진상파악과 유감표명을 했다면 일이 이렇게 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 같은데 못내 아쉽다.
박대통령은 원칙주의자다. 대통령의 말대로“원칙없이 적당히 타협하면 미래는 기약 못 한다”는 취지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치에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적당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너무 원칙이나 법만 강조하면 대화와 타협은 아예 증발해 버리고 일방통행하게 되어 버린다.
철도파업이 장기화되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까지 가세해 파업에 동조한다니 큰일이다. 국무총리까지 나서 민영화를 안 한다고 세번이나 말했지만 노조 측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사회 전체에 깔려있는 상호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원칙만 강조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다”를 외치는 복불복 게임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과 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 혼자 단기간에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을 믿고 파업을 끝내 달라고 호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원칙을 강조면서 밀어부친다 해서 끝날 일도 아니다.
노조가 사측의 경영문제 까지 관여하는 것은 전혀 도리에 맞지 않다는 것쯤은 웬만한 국민이면 다 안다. 불법파업이라며 원칙대로 밀어붙이는 모습도 때론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정치권이 너무 혼란스럽고 북한의 내부사정도 복잡하다. 이럴 때는 원칙보다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왜 하필 이렇게 복잡할 때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하려 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당장에 자회사를 설립하지 않아도 승객이나 물류 수송에 지장이 없다면 평화로울 때 시도하면 된다.
대통령이 코너에 몰려있고 일부야당과 종교계에 이어 이젠 노동계 까지 대통령의 퇴진을 논한다면 앞으로의 4년이 더욱 걱정된다.
노조위원장 잡으려고 생중계되는 가운데 5000여명의 경찰을 동원했는데 결국은 체포도 못하고 벌집 건드린 꼴이 됐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선택했다고 한다. 도행역시는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교수신문 측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인사와 정책 등의 분야에서 퇴행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 도행역시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도행역시는 박대통령이 어쩔 수없는 처지에서 원칙에 어긋나지만 부득이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정치는 간데없고 원칙만 떠다녀서는 정치안정과 사회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2013년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다. 다 털고 희망의 2014년을 맞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도리에 어긋나지만 때로는 순리에 어긋나는 일도 할 줄 아는 것이 종합예술인 정치의 총감독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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