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11. 20.


국회의원과 경호원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국회연설이 있는 날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성공적인 유럽순방을 마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불러들여 접견하는 등 성공적인 외치(外治)를 마쳤기에 이번 국회연설이 끝나면 여야의 경색국면이 풀려 민생법안을 비롯한 산적한 국정과제가 잘 풀리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지나친 기대는 늘 실망이 따른다더니 박대통령의 국회연설의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기도 전에 국회앞마당에서 야당 국회의원과 경호원의 충돌 소식이 먼저 들어왔다.
박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파견된 경호 차량을 야당의 국회의원이 발로차자 경호원이 뒷덜미를 잡았고 이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뒷머리가 경호원의 안면을 강타해 피를 흘리는 모습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신문마다 대서특필됐다.
참! 못났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국회의원쯤 되는 사람이 경호차에 발길질했다는 것도 우습고, 명색이 대통령의 경호를 나왔다는 사람이 그 정도도 방어 못하고 피를 질질 흘리는 모습이라니...
그래도 이날 오후엔 눈이 내렸다. 첫눈 치고는 오랜만에 보는 함박눈이라 반가웠다. \'눈\' 은 과거를 덮는다고 해서 이제까지 불만족스런 일은 사라지고 첫눈이 함박눈이면 다음해의 농사가 풍년이라는 속설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지만 지난일은 서로 화해하고 미래의 밝은 대한민국을 그려 나가야할 정치권의 소통을 기대했던 소박한 꿈이 눈발에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윤리특위위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박대통령의 한국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박대통령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말로 연설하면서 친밀감을 나타내며 그나라 사람들과 소통 하는 것을 보고, 외치(外治)도 중요하지만 내치(內治)의 중요성에 대해 고언(苦言)한 것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말도 그리 많이 하는 정치인도 아니었고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장이나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군 사이버사령부 등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은 박대통령과는 무관하다. 책임을 지우려면 당시의 이명박 대통령이나 부하를 내세워 차기 정권에 줄서려는 자들을 엄중 처벌해야하는 것이 맞다.
야당도 아마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직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조사를 요구한다. 곧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땅에 떨어진 당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끌어 모아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명진 목사가 박대통령에게 요구하는 한국말은 아마 진정성일 것이다.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태도가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정으로 말해도 야당은 그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이니 대통령의 사과는 안 된다고 참모들이 거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한국말로 하는 것은 국회의원을 따라올 자가 없다. 하도 말을 잘해서 그들이 하는 말이 진짜 한국말인지 시쳇말로 상대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하는 영어가 섞인 말인지 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며 소통이 안 되는 진짜 이유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여야대치 국면이 끝나는 줄 알았던 국회앞마당에서 피를 보았다. 그리고 마치 이를 다 덮고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의 첫눈도 내렸다. 이제 진짜 한국말을 시작하라. 함박눈을 보고 “내년은 좀 나아지려나?”면서 한숨만 내쉬는 서민도 좀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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