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11. 06.


늦가을의 단상(斷想)

 

 

 

벌써 한해의 끝자락이 보이는 계절이다. 파랗던 잔디도 누렇게 변해가고 온 산에는 각자의 색깔을 입은 단풍들이 행락객을 유혹한다.
춘천 마라톤을 준비하던 필자는 몸에 무리가 와서 목이 삐끗하고 편도선마저 부어올라 결국 참가하지 못했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했건만 출전조차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고,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책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지만 분한마음은 지금까지도 가시지가 않는다.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도록 아파서 병원을 찾은 필자는 병원장의 주사를 맞고서야 조금씩 움직이고 물도 넘길 수 있었다. “아! 병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이지 꼼짝도 못하고 물도 못 넘기던 사람 맞아?” 할 정도로 금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필자는 이번에 몸이 아파보면서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은 아마 심장이 가장 중요한 장기라고 말하겠지만 간이 안 좋은 사람은 간이 중요하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다리가 중요하며,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은 눈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모두의 꿈과 희망이 다르듯 환자들도 각자 우선 현재 가장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지금 아픈 곳만 완치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아파봐야 다른 사람의 고통도 조금은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설마 저 사람이 나만큼 아플까? 내가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울 걸!”하면서 “저사람 보다 내가 더 아프니까 나부터 치료해 달라”며 아우성이다.
요즘 정치도 그래 보인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야당도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며 여유부리는 듯 보이고, 야당은 “다 알지만 당신은 승자니까 다 가졌고 우리는 패자이니 조금 나눠달라”며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조금씩 떨어지고 제일 야당은 아직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의원의 지지도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인지 야당은 힘을 합해도 될까 말까 한 모양인데 서로 헐뜯기 바쁘다. 아마 신당창당과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겠지만 산적한 민생법안이 처리되기를 기다리는 국민입장에서는 애간장이 타는 노릇이다.
정치에도 의사가 필요해 보인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병을 맡겨야 치료가 빠르다고 한다. 우리 국민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뻔한 사탕발림에 나라의 곳간과 산적한 문제를 맡겼다. 물론 그들을 진정으로 믿고 맡긴 것은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 일 뿐이다.
우리 몸 안의 각종 장기들과 몸을 지탱해주는 손발과 척추 및 목 등 사실 어디 한 군데만 안 좋아도 불편하다. 사람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어 한두 군데야 조금씩 좋지 않아도 그럭저럭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으면 그냥 잊고 산다.
정치를 국가의 전부라면 청와대는 나라의 심장이다. 야당도 정치의 일부고 그들도 곳곳이 쑤시고 아프다. 따라서 대통령은 의사의 마음으로 곳곳의 아픔을 돌봐야 한다. 심장만 튼튼하다고 간과 신장이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온몸이 다 좋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선 급한 것은 상호 신뢰다.
의사의 얼굴만 봐도 아픈 곳이 싹 달아난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를 믿지 못하면 병도 잘 낫지 않는다고 한다. 서서히 겨울은 다가오는데 올겨울은 조금 따뜻할 줄 알았던 믿음이 깨지려한다. 까짓 나라꼴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살면 되는 사회풍토에 제 한몸도 살피지 못하면서 별걱정을 다하고 있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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