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3. 03. 26.
소중한 인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강성만
“세번째 만남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만남이었다.”
감히 온국민이 사랑하는 수필이라 말할 수 있는 피천득의 “인연”의 한 구절이다.
수필 “인연”의 저자는 도쿄 M선생의 집에서 시기를 달리하여 만난 아사코라는 한 소녀의 모습에서 받은 감정을 쓰고 있는데 첫 만남에서는 “어리고 귀여운 꽃”, 14년이 지나 두 번째 만남에선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된 귀한 집 딸”이라며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10년이 지난 세 번째 만남에서는 백합같이 시들어 간다는 표현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에서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만남”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의 추억 속 인연, 수필처럼 마지막에 아쉬움을 남기는 인연도 있지만 한번 맺은 인연을 평생 아름답게 이어가는 인연도 있다.
얼마전 언론에서는 아름다운 인연을 소개했었다. 1953년 한국전에 참전했던 캐드월러더씨는 국가보훈처로 추억의 소녀를 찾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노병의 바램을 들어주고자 ‘화상소녀 찾기 캠페인’을 전개하여 미군부대에서 화상치료를 받은 한국소녀를 찾아 인연의 끈을 연결해주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옛날의 소녀에게도 캐드월러더씨는 평생 감사의 마음을 품었던 ‘미국 아빠’였다고 한다.
그리고,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포성이 울리는 전쟁터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하던 150여명의 한국학생들을 보고 가평에 주둔했던 미40사단 장병들은 1인당 2달러의 모금을 통해 학교를 지어주고 그 학교 학생들에게 23년동안 매년 장학금을 전달하며 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지금까지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과 슬픔만 준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최근 정전 60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60년전 한국과의 인연 찾기’를 통해 아픈 기억 한편에서는 평생 잊지못할 따뜻한 인연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6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세계 수준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고 또 이에 어울리는 번영과 안락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60년전 이름도 모르던 낯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던 백발의 노인이 된 21개국의 참전용사들과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인연의 끈을 다시 이으려 하고 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있던 작고 가난한 나라의 눈부신 발전과 그에 합당하게 감사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을 걱정하고 준비하기 보다는 마치 일상의 작은 사건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의 안보의식을 생각하면 또 다시 폐허 속의 전쟁이 재현될까 두렵다. 이제 막 독립했던 가난한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뻗쳤던 수많은 젊은 장병의 희생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오늘의 대한민국을 미래의 더 큰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피천득의 수필 속의 세 번째 만남처럼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만남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맺은 인연이 그들의 생애 속에 영원히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