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12. 18.


한국을 사랑했던 이방인들을 추모하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강성만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참으로 비장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한국’이라고 굳이 지칭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미8군 초대사령관 월튼 워커의 말이다.

 월튼 워커는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달 선정하고 있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중 1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사람으로 얼마전 12월3일에는 용산 미군기지내 드래곤힐호텔에서 월튼 워커대장의 제6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월튼 워커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데 있어 6.25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듯하여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6.25전쟁 초반에 북한 공산군의 파상공세에 밀려 국토의 90%를 내어주고 전황이 매우 불리하던 7월말 경상북도 상주지구를 지키던 미 제25사단장은 철수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현지로 달려간 워커 중장은 사수(死守) 명령을 내렸다.
 그는 더 이상 증원군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 장병들에게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미군장병들에게는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는 있을 수 없다"고 독려했다. 워커 장군의 이 말은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라는 명언으로 남게 됐다. 워커 장군의 굳은 의지는 결국 증원병도 없는 상태에서 낙동강전선 일명 ‘워커 라인’을 성공적으로 사수하여 전세를 만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낙동강전투는 북한 공산군의 주력을 무찌르고 6·25전쟁 발발이래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하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워커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장군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 본관 정문 산자락에 세워진 비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의 워커. 아버지와 함께 6.25전쟁에 참전했던 월튼 워커대장의 아들 샘 워커 당시 대위도 아버지의 유해를 직접 운구하여 본국의 앨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불복하면서 중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전쟁터로 돌아가겠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만큼 발전한 대한민국이 온전한 우리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워커장군을 비롯한 유엔참전국 용사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이방인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몇 번이나 생각했을까?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결초보은(結梢報恩)이란 한자어가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추구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12월 23일은 워커대장이 현 서울 도봉구(도봉역 인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날이다. 좀 더 많은 국민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방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워커대장의 명복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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