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2. 08. 28.



동유럽을 다녀와서(2)

 

 


성북구 의원 김일영

 

 

특히 폴란드 크라코프 근교 오슈비엠침 (독일어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2차대전 당시 150만명의 생명이 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다는 것 그 당시 희생된 유태인들의 옷, 가전제품, 안경, 가죽가방, 가죽구두, 생활용품 등이 산더미로 쌓여있는 현장을 볼 수 있었으며 순식간에 1만명 이상을 가스로 살생시켰던 가스실 현장을 보며 히틀러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젊은시절 그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번화하고 정치적 상업적으로 자유로웠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거리의 화가겸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빈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문화도시였다.
거리엔 히틀러 같은 게르만출신 부랑자가 넘쳐났고 반대로 당시 빈의 유력한 재력가들 중에 유태인이 빈의 중요한 경제력을 쥐고 있었다. 따라서 히틀러에게는 이 도시의 자유로움과 부유함 낭만들이 모두 더러운 쓰레기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동유럽은 관광의 도시로 가는 곳마다 옛 문화가 살아 숨쉬는 그리고 독특한 건축문화에 입을 벌릴 수 없었다. 깨끗한 도시, 질서있는 자동차문화, 낮에도 자동차는 전조등을 켜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자동차 사고를 절반이상 줄일 수 있었고, 옛것을 매우 소중하게 느끼고 생활하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로 보였다


동유럽은 건축문화와 환경이 역사를 이루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한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건축문화(주거)는 보통 몇백년의 세월이 흘러도 옛 모습 그대로 다시 현대 건축문화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5층 이상의 아파트가 없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도 아파트 주거문화보다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리고 역사 속에 관광문화도시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과 주거정책을 다시 세워나가는 서울시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러나 동유럽은 서비스문화는 아직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공산국가였던 그 틀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못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한 식수는 석회성분이 많아 모두 페트병에 있는 물을 사서 먹은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이란 말이 괜스레 나온 말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수 걱정없는 나라,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수돗물은 그냥 먹어도 된다. 세계 어느 나라 식수로도 그만이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돌아왔으며 식수 걱정없이 어디를 가나 마음대로 믿고 마실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국민은 우리 땅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여정이었다.
동유럽의 고전과 선진문화를 배우고 나치의 잔인함을 보면서 우리나라 선인들도 36년의 일제 강점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도 생각했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고, 환경을 보호해야 후손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물려준다는 교훈을 얻은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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