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11. 19.


  도서명: 밀림무정
  저   자: 김탁환
  출판사: 다산책방
  출간일: 2010-11-08
  가   격: 각권 12,000원

 

 

 

 

책소개

 

저자 김탁환 1968년 생. 치밀한 이야기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후학을 기르다가 마침내 온전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노서아가비>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고증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매혹적인 서사’를 보여주었던 그는, 최근 <99>, <눈 먼 시계공>을 통해 일상적인 상상을 뒤흔드는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이제 그의 새로운 얼굴은 호랑이다. 조선의 젊은 포수다. ‘백호와 한 사내의 대결’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해 방대한 자료 조사, 제주도와 러시아를 아우르는 현장 답사, 불면의 밤을 수놓는 퇴고과정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벼르고 별렀던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모두 쏟아 부었다. 무더운 여름 낮밤, 그는 개마고원의 냉혹한 설산을 헤매는 포수가 되었다가 밀림보다 무자비한 경성시가를 내달리는 백호가 되었다가 단 한 번 맺어졌던 정인의 뜨거운 품속으로 숨어드는 숫눈 같은 남자가 되었다. <밀림무정>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작품은 조선의 마지막 야생호랑이와 그 뒤를 쫓는 포수의 7년에 걸친 복수극이 아니다. 생을 걸고 무너뜨려야 할 적이었던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적이 되면서 얽혀드는 이야기, 야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 속에서도 서로만을 노려보며 끝까지 나아갔던 자들의 거칠 것 없는 승부에 대한 기록이다. 거칠면서도 정직한 본능이 지배하던 한 시절이 <밀림무정>과 함께 불타오른다.

 

 “내게는 이 작품이 새로운 승부처”

가장 고전적인 소재로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준 김탁환의 가능성!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지만 섣불리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밀림무정>이 그렇다. 작가는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1940년대, 폭설로 뒤덮인 개마고원에서 펼쳐지는 7년간의 추격전을 그려내기 위해 15년을 기다렸다. 시대적 상황을 담기 위해 수많은 역사서와 자료들을 탐독했고, 맹수의 습성과 서식지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동물도감과 서식지분포지도를 훑고, 실제 호랑이의 사냥방법, 적을 덮칠 때의 행동반경에서부터 그 시절 개마고원에 서식했던 표범, 삵, 불곰 같은 맹수들의 생태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체득했다. 제주도와 러시아를 아우르는 현장답사는 필수였다.

이 작품은 <노인과 바다> <모비딕>의 뒤를 잇는 위대한 승부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이며, 야성이 살아 숨 쉬었던 ‘날것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누구나 냉혹한 설산을 헤치며 거대한 사냥감을 쫓는 고독한 인간이 된다. 나라가 없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총과 칼을 빼앗기고, 맹수를 잡던 강인한 기개를 묻어둔 채 기껏해야 그물을 들고 사냥감을 몰아야 했던 개마고원 포수가 된다. 그래서 더욱더 세상사 돌아보지 않고 단 하나의 적을 추격했던 광기 어린 승부사가 된다.

그 모든 것을 담기 위해 15년이라는 기다림은 결코 길지 않았다.

 

“인간과 맹수의 일생을 건 추격전!”

너를 쫓던 7년간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때만큼 내 심장이 요동쳤던 적은 없었다

서로를 단 하나의 적수로 인정했던 포수와 백호. 서로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후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상황’에 빠진 그들은 7년 동안 개마고원을 헤매며 서로의 흔적을 추격한다. 그리고 마침내 눈 덮인 백두산 정상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수년 동안 이어져왔던 악연을 끊기도 전에, 일본 해수격멸대가 밀림으로 들이닥치고. 규율보다 야성에 따라 움직이는 개마고원 포수와 신출귀몰한 야생호랑이는 병사들이 처리해야 할 공동의 목표물이 된다. 결국 포박 당한 채 경성으로 끌려가는 그들. 포수와 호랑이에게 경성이라는 대도시는 밀림보다 낯설고 폭설보다 두려운 그 무엇이었다.

‘적이 가장 강성할 때를 기다린다’는 승부 원칙 따위 없는 비열한 도시에서, 그들은 미치도록 무너뜨리고 싶었던 존재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결국 7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동화되어왔음을, 세상 밖에서 서로만을 노려보며 나아갔던 그 시절이 생을 통틀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그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데….

 

내 안의 강함을 느껴본 적 언제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아침에 집을 나와, 끝날 것 같지 않은 회의시간을 견디고 눈치 보기와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생활의 반복. 생활을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떠올려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불현듯 배낭을 꾸려 캠핑을 떠나고 싶어진다. 텔레비전 속 누군가를 응원하며 일상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흥분에 사로잡힌다.

<밀림무정>은 잠깐씩 ‘다른 곳’을 꿈꾸는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다. 일상 속에 짓눌려, 남자의 뜨거운 본능을 잊고 살았던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생을 송두리째 걸 만한 거대한 목표를 갈망하고, 내 안의 강함을 확인시켜주는 최고의 맞수를 열망하고, 의리와 뜨거운 땀으로 뒤범벅된 세계에 한번쯤 몸담고 싶은 로망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밀림무정> 속의 밀림은 너무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촉매제다. 그곳에는 쩨쩨한 세상사 대신 대의가 있고, 동지가 있고, 싸워보고 싶은 적이 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그것이 총 800페이지에 육박하지만 책을 든 순간부터 거침없이 빠져드는 이유다.

가끔씩 ‘이곳’을 잊을 수 있어야 또다시 일상에 충실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명제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 속으로(1,2권)

 

산은 흰머리가 집으로 숨어 들어와 수의 팔뚝을 물어뜯은 것을 자신을 향한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충분히 수의 목숨을 끊을 여유가 있었는데도, 흰머리는 팔뚝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산을 노려보았다.

‘잘 봐라. 넌 사냥꾼도 가장도 사내도 아니다. 집과 가족을 지킬 힘이 없다!’

산은 밀림무정이라고 적힌 아비의 모신나강을 움켜쥐고, 뜯겨나간 수의 팔에 눈물을 쏟으며 맹세했다. 놈을 죽이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노라고.--1권 p.129

 

말하기조차 힘든 고통이란 거 아오. 하지만 자책 마시오. 먼저 쏘지 않았으면 당했소. 그 순간에는 순박한 소년이 아니라 한 마리 맹수였던 거요. 맹수와 일대 일로 마주치면 둘 중 하나요. 죽든가 죽이든가. 밀림의 이치요. 어떤 이는 무정(無情)하다 비난도 하지만, 정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요. 살고 죽음이 그 짧은 순간에 결정되는 거니까. 죽은 자는 영원히 밀림 속에 머물고 산 자는 또 다른 대결을 향해 나아가는 법이오. --1권 p.359

 

밀림이 아무리 빽빽하고 수많은 길이 뒤엉켜 있는 듯 보여도, 목적지에 안전하게 이르기 위해선 꼭 가야 하는 길이 있는 법이오. 우리는 그 길을 건넌 거요. 자,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이 일로 지체할 수 없소. 오직 생명이 달아난 시신만이 고원의 대지 위에 누워 뜨거운 태양 아래 썩어갈 자유가 있소. 자기 발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이라면, 인간이든 들짐승이든, 쉼 없이 발을 놀려 새로운 길로 접어들어야 하오. 그게 살아 있음의 증거니까.--1권 p.360

 

“쏴요, 어서.” 그미가 산의 등 뒤로 숨어 앉으며 말했다. “주린 수리부엉이라오. 갔소.” “아니에요. 내가 수리부엉이도 모를까봐 그래요? 난 저 눈동자를 알아요. 날 죽이려고 내내 따라오고 있어요. 어서 쏴버리라니까요.” 산이 그미를 안고 토닥였다. “괜찮소. 아무 일도 없소. 나만 믿으시오.” --1권 p.369

 

7년이다. 7년 동안 내가 원한 승부가 이것이었나. 아니다. 너는 도약하고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그 한순간을 갈망했다. 그런데 너는 지금 기절한 채 초라한 몰골로 눈 속에 파묻혔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네 목숨을 끊을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지금 기절한 채 초라한 몰골로 눈 속에 파묻혔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네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이렇게 네 목숨을 앗는 것은, 너를 추격한 7년 세월을 비웃는 짓이다. 넌 개마고원의 지배자답게 당당해야 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크고 강해야 한다. 약한 너를 죽이는 것은 내가 원하는 복수가 아니다. 난 널 쏘지 않겠다. 쏠 수 없다. 산이 천천히 방아쇠에서 검지를 뗐고 총구를 내렸다. 밀림무정. 개머리판에 새긴 글자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2권 p. 62

 

산은 달리며 생각했다. 궁지다. 이중삼중 포위되었으니 활로가 없다. 이제 죽는 일만 남았는가. 나무 사이로 건너뛰며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는 일만 남았는가. 주홍의 검은 눈동자가 절망을 흔들며 떠올랐다. 꼭 살아야 해요, 흰머리도 당신도!--2권 p.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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