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10. 22.


 

도서명: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
저   자: 조헌용
출판사: 실천문학사
출간일: 2010-09-30
가   격: 11,000원

 

 

 

책소개

세계의 축소판, 마라도에 숨어든 7인의 이방인에게서 ‘추방된 목소리’들을 받아 적다

마라도에서 탄생한 일곱 편의 연작소설은 모두 외지에서 마라도로 ‘온’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노름빚에 쫓겨 궁여지책을 찾다가 섬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더부살이를 하러 천국에서 온 친구,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의 기억을 쫓아 바다를 향해 장애를 딛고 도시에서 온 천사, 간첩으로 몰렸다가 풀려난 뒤 광인으로 살고 있는 숲에서 온 거인, 기생놀음을 하러 월남했다 영영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북에서 온 노인, 번개 맞은 우주선이 추락하는 바람에 우연히 마라도에 숨어든 우주인 슈루파크에서 온 아이, 우주의 사명을 품고 글을 쓰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배시키러 육지에서, 아니 지구에서 온 남자, 폭력적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미래를 점칠 공간을 찾아 사막에서 온 여자. 이들 7인은 외부인, 이방인, 여행자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애초 작가가 “자본의 침투에 서서히 변하는 동네와 사라지는 것들,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의 웃기고 슬픈 이야기”로 기획했던 ‘마라도 연작’은 이렇게 마라도에 불시착한 이방인들의 이야기로 엮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섬은 관광안내서의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선에 갇혀 있지 않다. 이를테면 「도시에서 온 천사」의 시각장애인 남자가 홀로 찾아드는 이 섬은 톳이 들어간 자장면으로 유명한 천혜의 관광지가 아니다. 그에게 바다는 어머니의 옛이야기 속에 펼쳐져 있던 미지의 영역이며, 전설 속의 ‘움직이는 섬’ 마라도를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마라도를 기념하는 수많은 사진 속에서 푸른 지평선을 평화롭게 굴러가는 ‘골프카’는 「천국에서 온 친구」에서 더 이상 낭만적인 마라도 명물이 아니다. 이권 다툼으로 폭력이 오가는 냉혹한 자본의 현실이 여지없이 반복되는 그 섬에서 골프카 관광으로 한몫 챙겨보려던 친구는 빚만 남긴 채 도망간다. 소설은 이처럼 열망(혹은 욕망)과 절망을 안고 방황하는 이들이 도달한 상징적 지표로서 마라도를 형상화한다. 또한 낚시, 솜사탕 기계, 콜라병 조각, 고래 이야기, 고장 난 손목시계, 수족관과 같은 작은 소재들을 통해 그들은 만나고 스쳐 지나며 서로 다른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예컨대 「지구에서 온 남자」에서 소년 화자의 뱃가죽을 주욱 가른 깨진 콜라병의 일부는 「도시에서 온 천사」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장님의 얼굴에 햇살을 반사하며 빛을 꿈꾸게 한다. 전설 속에서나 움직인다고 전해지던 섬 마라도는, 그렇게 서로에게서 인간의 상처를 발견해내면서 내면의 우주를 유영하는 ‘움직이는 섬’이 된다.

그렇다면 7인의 이방인들은 어째서 작가를 마라도에 불러온 것일까? 자신을 우주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선발된 특사 ‘꾸이람’이라고 믿고 있는 소설가, 「지구에서 온 남자」의 주인공 화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 뱃가죽이 쫘악 벌어진 그날, 그리하여 내 몸에 우주의 안테나가 생긴 그날 뒤” “나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우주의 비밀을 팔아먹는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르겠다”. 평론가 장성규는 조헌용의 소설집에서 광기에 들린 인물에 주목, 그들의 광기 어린 증언을 욕망하면서 다른 한편 현실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 시대 소설가의 위치라고 말한다.

이 간극을 손쉽게 해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조헌용의 미덕이다. (중략) 지금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훨씬 더 세련되게 작동한다. 일상을 잠식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끊임없이 동요하고 균열되는 주체야말로 현재 유의미한 분열증적 주체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일상을 규율하는 지금, 글쓰기의 영역 자체에서 진행되는 위와 같은 분열증적 양상이야말로 소설가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의식일지도 모른다."
_장성규 해설 「광기의 증언, 분열의 발화」

현실에서 추방되었으나 ‘마라도’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비로소 발화된 일곱 가지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모순상황을 한데 불러모은 축소판이자 거울로서 ‘마라도’를 재인식하게 한다. ‘특유의 서기관 정신’으로 주목받아온 작가는 이렇듯 현실법칙에 충실한 서기관의 언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법칙으로부터 추방된 목소리들’을 ‘우주의 사명’으로 받아 적고 있다.

“꾸쁘리 홀홀 쏠붸 으흐럼”― 아랍의 노래처럼, 또는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스산한 음절들은 바로 소설 속의 증언에 의하면 ‘슈르파크’ 별의 언어다. 이를 지구의 말로 번역한 것이 바로 소설의 표제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인데, 나무가 자랄 숲조차 없고 평평한 땅, 느린 걸음으로 사십 분이면 한 바퀴를 족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 너무 작아 파도 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섬은 어찌 보면 너른 바다를 유영하는 거북이를 닮아 있다. 한 시절 마라도에서 풍문이 되었다 돌아온 조헌용 소설가는 그렇게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라는 별칭으로 우리의 소우주가 소용돌이치는 한 섬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뒷표지글

십여 년 전 조를 만났다. 상도동 길갓집 그의 자취방에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오려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중편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 당선작을 태극기처럼 벽에 건 풍경을 보고 나는 결코 웃지 않았다. 그는 워낙 굵게 등단한 신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 풍경에서 문학적 결기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홀연 제주로 떠나 몇 해나 풍문이 되었다. 타로 점술가가 되었노라 했다. 첫 소설집 새만금 연작을 읽을 때 그에게 바다는 고향이나 기억, 혹은 어떤 저항쯤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번 ‘마라도 연작’으로 귀환한 그를 보며 그가 천생 뼛속까지 바다 태생인 걸 인정했다. 마라도? 그 작고 평평하며 바람찬 섬에 간 저간의 사정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그 작은 섬에는 욕망과 절망과 상실에 빠져 허우적이는 많은 여행자와 그리고 조난당한 우주인이 산다. 그리고 무려 숨을 데도 있다! 그래서 마라도는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닿을 수 있는 곳 같기도 하다. 모래시계와 같이 메마르고 황량한 기억들이 흘러간 소설. 자, 운명이 궁금하거든 책갈피에 숨긴 타로카드를 뽑아보라고 한다.
_전성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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