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 10. 14.


 

 도서명: 허수아비춤
 저   자: 조정래
 출판사: 문학의문학
 출간일: 2010-10-04
 가   격: 12,000원

 

 

 

 

책소개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우리 근현대사를 대하소설로 실어내어 한국 소설의 대백두를 쌓아 올린 소설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비리와 천민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성장의 빛과 그늘, 자본과 분배의 문제를 현란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 한국의 근현대사, 분단과 이념의 문제, 비전향 장기수와 역사 밖으로 밀려났던 포로들의 인권 문제를 다뤄왔던 작가의 전작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현대로 넘어와 작금의 현실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가진 자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정면에서 공략하고 있는 야심작이다.
소설의 도입부는, 업계 2위인 일광그룹 소속 강기준 실행총무가 비자금 문제로 실형을 살고 나온 그룹 총수로부터, 라이벌인 일류 태봉그룹처럼 \'회장 직속 정보 조직체\'를 꾸리라는 특급 지령을 받는다. 이에 자신의 대학 선배이자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인 박재우를 스카우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소설은 단순히 대기업과 권력자들의 비리만을 풍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지지해 준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를 되묻는다. 그것은 따가운 회초리가 되어 역사 앞에 선 국민으로서의 준엄한 책임을 공유케 하는 성찰적 작품이다

 

조정래의 한 마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60년이 넘었고, 경제발전의 역사는 50년을 헤아린다. 우리는 세계를 향하여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해 냈다’고 자랑한다. 세계 또한 ‘2차 대전 이후에 제3세계 중에서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그건 20세기 기적 중의 하나다’라고 평가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한 것은 분명 우리 모두의 긍지이며, 맘껏 자랑해도 자만일 것 없는 우리들의 떳떳한 자존심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정치에만 ‘민주화’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에 비해 낯선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뜻은 어렵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세금 내라는 것 다 내고는 사업 못해먹는다.’ 수십 년에 걸쳐서 이런 말을 예사로 할 정도로 거의 모든 기업들은 투명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비자금 사건은 나날이 커지면서 사회적 불신이 자꾸만 깊어지고 있다. 왜 그런 행태들이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그런 행위들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그런 잘못들이 반복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제 우리는 그런 물음들 앞에 정면으로 서야 할 때가 되었고, 그 응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길이다.

전후의 굶주림 속에서 허덕이던 저 1960년대 초반에 우리 국민 모두가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했던 것은 ‘무슨 수를 써서든 잘사는 것’이었다. 그 국민적 갈망은 지금도 여전해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되는 것’으로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뜨거운 갈망 때문에 OECD 30개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11위에서 9위까지 뛰어올랐으면서도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는 꼴찌이고, 자살률은 1위이다. 국민소득 2만 불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그 비극은 국민소득 4만 불 이상의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끝없는 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들이 국민소득 2만 불대에서 깨끗한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었음이 그 좋은 증거다.

우리의 경제발전은 우리가 잘살게 된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고 비원인 평화통일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또 하나의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북한보다 직접 비교로 35배, 복합 효과로 100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 평화통일의 길에 더 크게 기여하게 하기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하는 문학은 이제 그 물음과 응답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모습이 추하든 아름답든 그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자화상을 똑바로 보기를 게을리 할수록, 회피할수록 우리의 비극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런 소설이 완전히 필요 없게 될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 도정이 인간의 삶이고, 우리네 인생 아닐까.

기상 관측 이후 ‘최초라는 기록을 거듭 갈아치울 만큼 폭염과 폭우가 계속된 여름이었다. 그 더위를 무릅써야 했기에 마음은 더 우울했을까. 아니, 푸르게 빛나는 먼빛을 볼 수 있었기에 소설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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