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10. 08.
할 말은 하겠다지만
김 세 현
행정학박사 / 호원대겸임교수
우여곡절 끝에 정운찬 총리가 아슬아슬하게 총리에 임명됐다. 알다시피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로 대통령 외에는 눈치 볼 필요 없는 자리다.
정 총리는 前(전)정권에서도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한마디로 잘난 인물이기 때문에 색깔이 다른 이명박 정권에서 총리로 지명된 공인된 인재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인물이 혹독한 청문회 과정을 거치며 많이 망가졌다. 그의 말대로 가족들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친구와 밤새 폭음도 한 것을 보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가 청문회를 마치고 총리 인준에 성공하자 손까지 들고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물론 기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웃는 그의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이제 총리가 됐으니 야당이 아무리 난리쳐도 더 큰(?) 건이 터지기 전에는 당분간 총리직을 수행할 것이고 그의 말대로 세종시 문제나 4대강 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다면 그의 원죄는 누그러지고 몇 년 후엔 대권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쩌면 총리 청문회가 대권후보의 전초전쯤 됐다고 생각하면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속상한 일도 아닌지 모른다.
정 총리는 총리가 되자마자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마치 그 말은 대통령이 누구 말을 잘 안 듣는 것으로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그는 소신이 강해 다른 총리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직언을 서슴지 않겠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정 총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우리는 전에 이회창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 언쟁을 하고 그만 둔 것을 보았다. 우리 국민은 그를 대쪽 총리니 뭐니 하면서 일약 대권 후보로 인정했던 것도 기억한다.
총리를 비롯한 장관이나 참모들은 중요한 나랏일을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상의 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안다.
소위 대통령의 부하들이 할 말은 하겠다는 얘기는 중요 정책결정에서 대통령을 설득하겠다는 말보다는 그와 마음에 안 맞으면 언론에 흘리겠다는 말로 들린다.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고 총리를 비롯한 장관직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임명직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든 정책에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됨은 물론이며 정책에 대한 의견 조율이 필요한 문제도 결정과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다.
대통령측근들은 대통령에게 세상의 여론을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자기는 참모 일 뿐이며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할 말이 있으면 수시로 둘만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이지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대통령에게 할 말 다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정 총리와 이 대통령간에 언제 불협화음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정 총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고 이명박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밑에서 치받는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정 총리의 할 말은 하겠다는 말이 영 마음에 걸린다.
그의 말대로 대권에 뜻이 없다는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다 믿을 수도 없다. 차라리 근신하는 자세로 조용히 일하는 모습이 더 나을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