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 02. 18.
“고맙습니다” 추기경이 남기고 간 정신적 유산
“이 세상 누구도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한 이유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에서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이 말은 그저 단순히 말로만 남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을 이러한 자세로 살아온 한국인 종교지도자의 소명이 담긴 표현이다.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오른 고 김수환 추기경이 남기고 간 정신적 소산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부분이다.
2009년2월16일. 이날은 한국의 정신적 종교지도자이자 가톨릭사제들로부터 추앙받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날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종교인이자 사회지도자로 시대의 한복판에 섰던 고 김수환 추기경. 그는 추기경이란 역할이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한없이 약한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그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모든 순리에 따르되 정의와 바른길,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의 힘을 몸소 실천하고 마지막 남긴 한마디는 “고맙습니다”로 마감했다. 그의 마음속에 깊이 남은 한가지 미완의 과제가 있다면 북녘동포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일 것이다.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지난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북한 선교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결실을 지켜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고 김수환 추기경.
천주교로 인해 몰락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였고, 초등학교 1학년때 옹기장수였던 부친마저 선종하자 모친인 서중하 마르티나에 의해 어렵게 양육되면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의 모친은 옹기와 포목행상을 하며 김 추기경을 엄격하게 키웠다고 알려진다.
천주교 사제로 한국사회의 여러 방면에 정신적,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준 그는 우리의 근 현대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김 추기경의 생전 일화 중에 5년제 소신학교(小神學敎)인 동성상업학교(지금의 동성고등학교) 을조(乙組)에 입학 했을 당시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가 교장실에 불려가 크게 야단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그의 기품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외에 그의 일대기는 헤아리기 조차 어렵지만 노동인권문제, 1970년대 민주화 운동 등에 몸소 대처하고 우리사회의 모순점들의 맥락을 짚어내 방향을 제시한 점들은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이 종교를 넘어 이 땅의 버팀목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가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한 없이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는 평가에 아무도 제동을 걸지는 못한다.
우리는 정신적 지도자를 잃은 슬픔과 아울러 그가 남긴 유훈과 올바른 삶의 모습을 거울로 삼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진정한 인간애와 인류애를 실현해 가는데 가일층 힘써야 할 것이다.